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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게임 1.2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책 ‘바람의 그림자’는 참으로 오랫만에 두꺼운 책 2권을 꼼짝 않고 앉아서 읽게 만든 책이다. 마지막 장을 읽은 때쯤 이미 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책 '천사의 게임'도 전작과 닮은 듯 다른 매력으로 읽는 이를 붙들어 매는 마력을 가졌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을 흔히들 ‘환상적 사실주의’에 기반한 작품을 써낸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에 비교한다. 그의 작품 또한 스페인 내전 등 생생한 역사적 배경을 ‘해리포터 시리즈’만큼이나 환상적이고 마술적인 분위기에 절묘하게 녹여내기 때문이다.


전작과 신작 모두에는 ‘잊힌 책들의 무덤’이 등장한다. 세상에 쏟아져 나왔던 무수히 많은 책 중에 세월이 지나도 도서관에, 사람들의 책장에, 읽은 이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책은 얼마나 될까.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잊혀진 책들은 이 무덤 안에서 다시 누군가와 인연을 맺길 기다리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또한 좁은 골목이 이어진 동네의 작은 서점을 배경으로 하거나 신비스러운 과거를 지닌 작가 이야기, 혹은 작가를 꿈꾸다가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그가 전작 ‘바람의 그림자’에서 아직 먼 훗날의 일인 ‘TV의 세상’이 오는 것에 대해 혐오스러운 말투로 표현한 대목이 있는데, 이처럼 책들의 무덤이나 서점, 소설가의 비극적인 운명을 즐겨 다루는 것은 ‘책’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독한 고집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것이 노출되고, 상상력이 깃들 여지가 없는 칼라TV 세상은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이야기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천사의 게임’ 주인공인 다비드 마르틴은 그가 책 읽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아버지의 구박을 벗어나 몰래 드나들던 ‘셈페레와 아들’ 서점에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을 선물 받는다. 소설가의 꿈을 꾸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탑의 집’이라는 버려진 저택으로 옮겨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안드레아스 코렐리라는 베일에 싸인 남자로부터 ‘모든 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어 놓을 힘을 지닌 책’을 써 주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여러 해 동안의 필사적인 글쓰기로 건강을 잃고 9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다비드. 그를 옛 친구 셈페레가 ‘잊힌 책들의 묘지’로 안내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코렐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가 원하는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딘지 의심스러운 코렐리에 대해 은밀히 조사해본 결과, 그는 코렐리가 이미 오래전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탑의 집’의 비밀과 이 집의 전 주인 디에고의 죽음에 얽힌 비밀과 음모에 빠져들게 된다.


사폰의 책이 갖는 미덕은 우선 “에드거 앨런 포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거기에 스티븐 킹이 뒤섞인 듯하다”(커커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미스터리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재미있는 스토리다. 실재와 환상, 소설과 현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환상적인 분위기는 책의 결말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게 만드는 힘이다.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 환상소설을 버무려 놓은 것 같은 스토리와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안에는 그 시대와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의 소설이 마술적 사실주의로 평가받는 이유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주인공 주변 인물의 입을 통해,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해지는 생과 사랑에 대한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불쑥 불쑥 등장한다.


여름휴가는 받아놨는데 주룩 주룩 비가 오고 하늘이 온통 어두운 어느 날, 노릇한 고구마를 쪄서 준비해놓고 이 책의 첫 장을 넘겨보는 것은 어떨까.


◆ 작가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Carlos Ruiz Zafón)

:196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으며 1993년 발표한 첫 소설 『안개의 왕자』로 에데베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2001년 출간한 『바람의 그림자』가 전 세계에서 12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둔 후 그는 스페인에서 가장 성공한 소설가로 알려졌다. 2008년에 『천사의 게임』을 발표하면서 또 한 번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이 책은 스페인에서 10개월 만에 170만 부가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이른바 ‘사폰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민음사 제공)


◆ 천사의 게임 1.2 |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 송병선 역|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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