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에 갑자기 읽게된 책.
낯설게하기와 반전에 익숙해진 기대를 깨트린 소설이다.
산자와 죽은자, 생의 경계를 허물며 바라보는 삶이라는 길.
이 소설처럼 진부하고, 불안한 소통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을까?
뭔가 있겠지 기대는 아내를 잃은 대필작가의 쓸쓸한 뒷모습으로 끝나고 만다.
끝끝내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에 대한 설명은 없어 언제하고 기다렸고
마지막에 몽이란 이름이 붙여진 유기견이 그 집으로 들어온 아홉번째 강아지가라는 거 외엔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몽환적으로 던지는 말이 쿡쿡 찌를때가 있었다.
밑줄치기
사방이 아주 고요하면 예민해지는 게 아니라 둔한 방심 상태가 된다.
그런 방심상태가 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존재만 하던 것등이 슬며시 자기를 드러낸다.
의미라는 것도 그럴지 모른다.
절망이나 깊은 슬픔으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면 현실적 의미들이 사라진 곳에서 다른 차원의 의미가 올라온다.
자각은 갑작스러워야 자각이다.
간절함은 욕망과는 다른 것이었다. 산 자의 눈빛에는 자아가 깔린 욕망이 있다. 죽은 자는 다만 염원하고 소망한다.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지만 그건 욕망이 아니라 다만 그리움이다.
"까뮈가 그런 말을 했어요. 부조리한 세계에서는 '더 잘사는 것보다는 더 많이 사는 것이 중요하고"고
"살아온 게 모두 후회된다는 말은 말이야, 더 이상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애기야. 한 사람이 상대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는지는 누구도 몰라. 자기가 어떻게 살았는지만 알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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