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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Chez simo 2010. 6. 18. 22:13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

 

"나는 내 무덤에 웃으며 뛰어들 것이다"라고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에서 개인의 역사, 특질과 고유성, 행동 유형, 상황 등 항상 독특성을 지닌,

살과 피흘 가진 한 인간의 인격을 그리고 있다.

5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에 몰아 놓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대단한 만족감을 준다며 유대인 학살을 나치스가 제도적으로 체계적으로 추구한

최종 해결책을 열정적으로 실행에 옮긴 아이히만에 대한 악의 평범성과 타자 중심적 윤리. 정화.

악이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근원에서 나온다.

그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악의 평범성의 의미를  자기중심성을 벗어나 어떻게 타자중심적 윤리로 돌아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히만이 1962년 5월 31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2차대전 당시 450만~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이었던 그는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 자동차 기계공으로 숨어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돼 재판정에 섰다.

<전체주의의 기원> <폭력의 세기> 등의 저서로 20세기 전체주의에 대한 가장 탁월한 분석가ㆍ비판자로 꼽히는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아이히만 재판 소식을 듣고 강의를 취소한 채 미국 뉴요커 지의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으로 가 재판을 참관했다. 그의 참관기는 뉴요커에 5차례 기사로 게재됐고,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간행됐다.

아렌트는 여기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을 규정했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칸트의 도덕철학을 들먹이며 “명령받은 대로, 의무에 따라 행동했을 뿐, 비열한 동기나 악행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를 감정한 정신과 의사들은 그런 그의 정신상태를 정상이라고 판정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일상생활에서 아주 근면한 인간이고 무능하지도 어리석지도 않지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다”며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히 ‘생각의 무능성(thoughtlessness)’이었다”고 쓰고 있다.

개인적 발전을 추구하면서, 체제의 톱니바퀴로, 평범하게 살았던 아이히만. 아무리 거대한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도 그런 모습으로 우리 곁에,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통찰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쉼없이 ‘악의 평범성’은 목격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