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랑, 시간, 이별, 그리고 그리움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루는 구성 요소에는 말과 글도 있으며, 거기에는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굳이 들춰내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마지막 말과 글을 모은 책. 나는 언젠가 이런 책을 읽거나 쓰고 싶었다. 방에 남겨진 말, 메아리가 있는 방. 운명을 예고하는 말, 마지막 심장 소리. 이 책, 『죽음을 그리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담는 한편, 작가들과 사상가들이 자신의 작품에서 죽음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말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죽은 작가들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그 유령들 중에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단한 사람들도 있고, 자기 분야에서는 뚜렷한 족적을 남겼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죽은 작가들이 모인 방에서 여러분은 그들의 위대한 업적과 발자취뿐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일화, 어이없는 불만도 듣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던 볼테르는 계속해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자신을 보며 언제나 놀라워했다. 그는 여든셋까지 살았다. 1778년 5월 30일, 볼테르는 희곡 「이렌」의 공연을 위해 파리에 갔다가 죽었다. 사망 원인은 전립선암, 요독증, 피로, 그리고 아편 과다복용이었다. 나이가 너무 많은 것도 사망 원인 중 하나였다. 볼테르는 늙음을 "죽음의 어머니"라고 부르곤 했으며, 살다가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 허약해 살 가망이 없었던 볼테르.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세례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볼테르가 했던 말을 살펴보자. "제 임종의 순간을 잠시 미루고 여러분께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살아있으면 여러분에게 제 해골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무덤가에서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죽음은 치아 사이로 들어오죠. 그런데 이제 저는 이가 다 빠지고 없어요. 저는 살해된 채 태어난 겁니다." ―「나는 살해된 채 태어났다 : 볼테르」 중에서
1889년 어느 날, 모파상은 서재에 앉아 장편소설 『우리들의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등 뒤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뒤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자기 자신, 또 하나의 모파상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또 다른 모파상은 진짜 모파상의 앞에 마주 앉아 그가 쓰는 글을 받아 적었다. 모파상이 본 또 다른 모파상의 얼굴은 흐릿하고 아무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아서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거울에서 본 모습과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 환영 속의 모파상이 자기가 진짜 모파상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었다. 그후로 모파상은 글을 쓸 때, 도대체 누가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화창한 아침, 모파상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모파상의 상태 심각. 또 정신병원에 갇힐 예정." ―「나는 나와 마주보고 있었다 : 기 드 모파상」 중에서
체호프에게 살아있다는 건 무엇이었을까? 의사이기도 했던 체호프는 질병도, 환자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지방 귀족에게나 어울릴 법한 수염 뒤에, 슬픔과 아름다움은 하나이며 똑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작품 속 인물 중 한 명에게 이런 말을 하게 했다. "난 사람들이 싫어. 오래 전부터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지." 실제로 그랬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미지와 상상의 세계만 좋아했다. 그것은 어둠과 고독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체호프는 수첩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는 무덤에서 혼자 잠들게 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난 홀로 살았다." ―「나는 죽는다 : 안톤 체호프」 중에서
그렇게 사랑하던 단어인 죽음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릴케는 오히려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릴케는 자신만의 병을 원했다. 그가 죽음을 자신의 병과 연관시킨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낸시 운더리-볼카트에게 자신만의 죽음을 맞이하게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였다. "의사들이 정해준 대로 죽고 싶지 않아요. 난 자유롭게 죽고 싶소." 자기만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은 다소 기묘하다.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다는 소리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자기만의 위대한 죽음을 맞고 싶다는 바람도 기묘하긴 하다. 모든 것을 앗아가는 죽음을 어떻게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죽음을 맞이하면 나의 존재가 사라지는데, 어떻게 나다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건가? ―「주인 없는 방 : 라이너 마리
괴테와 릴케, 톨스토이, 칸트 등 인류의 지성과 문화를 이끌어온 작가와 사상가, 학자들의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하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구한 책. 2003년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 수상작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문인들의 유언, 그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 그들이 작품 속에서 죽음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종합해 그들의 사상과 문학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차례
- 프롤로그 : 죽음의 순간에
잘린 혀: 미셸 드 몽테뉴-1592년 9월 13일 홀로 죽을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1662년 8월 19일 검소한 죽음: 세비녜 부인-1696년 4월 17일 나는 살해된 채 태어났다: 볼테르-1778년 5월 30일 그래서 당신은 날 사랑하나요?: 데팡 부인-1780년 9월 23일 그만, 그만: 임마누엘 칸트-1804년 2월 12일 내 손을 잡아다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832년 3월 22일 죽음을 부르는 여인: 알렉산드르 푸슈킨-1837년 2월 10일 썼노라, 살았노라, 사랑했노라: 스탕달-1842년 3월 22일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죽음: 오노레 드 발자크-1850년 8월 18일 글쓰기, 종이, 연필: 하인리히 하이네-1856년 2월 17일 우리가 가졌던 최고의 것: 귀스타브 플로베르-1880년 5월 8일 나는 나와 마주보고 있었다: 기 드 모파상-1893년 7월 6일 나는 죽는다: 안톤 체호프-1904년 7월 14일 병상에서 편지를 씁니다: 장 로랭-1906년 6월 30일 인생에 꼭 필요한 것: 레오 톨스토이-1910년 11월 7일 주인 없는 방: 라이너 마리아 릴케-1926년 12월 29일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1939년 9월 23일 검은색 가방: 발터 벤야민-1940년 9월 26일 표절된 죽음: 슈테판 츠바이크-1942년 2월 22일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도로시 파커-1967년 6월 7일 군대는 새벽에 떠난다: 디노 부자티-1972년 1월 28일 죽음은 유희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977년 7월 2일
- 에필로그 : 그리고 지금
프랑스의 저명한 문학평론가 미셸 슈나이더가 문인 23인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의 진실을 들려주는 책.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인류의 문화사를 만든 문인들의 다양한 죽음을 통해 '죽음'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유언, 죽음에 대한 기록, 작품 속에서 묘사한 죽음 등을 종합해 문인들의 죽음의 순간을 재구성해내었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사상가, 소설가, 시인, 평론가, 심리학자, 그리고 중세의 귀족 문화를 이끈 귀부인이다. 저자는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린 볼테르와 톨스토이,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살한 벤야민과 츠바이크, 미쳐서 죽은 모파상, 죽음조차 문학으로 형상화하고 싶어한 체호프와 릴케, 죽을 때에야 행복을 느낀 데팡 부인과 파커 등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죽음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성찰과 위트 넘치는 해학을 덧붙이고 있다.
또한 인류 문화사의 거장들이 죽음 앞에서는 왜소하고, 비참한 존재였다는 것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문인들이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그들의 문학이나 사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아울러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2003년 메디치상 에세이부문 수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