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김이은의「마다가스카라 자살예방센터」

Chez simo 2005. 8. 13. 10:44



길 없는 길을 가는 사람


Ⅰ. 출구가 없는 세상

최근 연이은 자살문제로 인해 사회적인 충격과 고통을 겪고 있다. 자살이 급증하고 있으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 되고 있지만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비정(非情)과 물신(物神)의 세상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소외감과 절망감 속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하루 36명, 1시간에 1.5명이 자살을 하고 또한 자살을 기도한 사람은5~25배에 해당한다고 한다. 김이은의「마다가스카라 자살예방센터」는 한국 사회의 아픈 현실 “자살”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소통되지 않은 자아와 빛이 곧 죽음인 그늘 속의 세계에선 누구나 비상구를 찾는다. 여기를 지나면 행여나 있을 충족되지 못한 세계, 외면하고 싶은 현실에서 벗어난 다른 모습의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가는 우리의 현실 속에, 길 없는 길을 가는 자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캄캄한 이쪽과 대낮처럼 환한 저쪽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한쪽으로만 기우는 풍경으로 소설의 전반부는 시작된다. 햇볕을 쬐면 숨이 가빠지고 온몸에 힘이 빠져 가누지 못하다가 마침내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희귀병의 남자가 자신의 인생처럼 빵 주머니가 덕지덕지 붙은 카고 팬츠에 찌라시를 채우고 어그적 거리며 풀칠을 하는 자기 방어는 무기력하면서도 극도로 초조하게 진행되어간다. 더욱이 초반부에 작가는 이태백이라는 남자가 자살가능 지수가 무려 86퍼센트라는 명제아래 한국자살예방센터 직원이라는 김도명이라는 여자의 등장으로 독자를 끌어 당긴다 .
두 사람의 만남의 우연성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그러나 자살기도 경력이야말로 <비상구>회원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생각하고 여자를 자살회원을 모집하기 위하여 자살예방센터의 직원으로 들어가게 한 설정은, 깜찍한 작가의 장식 같다. 그러므로써 남자와 여자의 공유가 드러나며 두 사람의 만남의 계연성이 밝혀진다.
또한ꡐ하니 익스프레스ꡑ와ꡐ늘 푸른 부동산ꡑ의 두 가지 찌라시와 대낮인데도 실내에는 희미하고 불안한 어둠이 가득한 남자의 방에서 여자가 두텁게 쳐진 커튼을 걷어내자 두 동강이 나는 날카로운 햇살로 작가는 두 개의 갈등의 요소를 깔아 놓는다.

신촌 역엔 어디에도 구번 출구가 없었다. 지하역내에서 안내표지판을 열 번도 더 넘게 점검했지만 신촌 역엔 출구가 여덟 개뿐이었다. 역무원에게 물어봐도 돌아온 대답은 표지판과 다르지 않았다. 센터에 전화해 보니 분명 신촌역 구번 출구가 맞다고 확인해 줬다. 여자는 지하에 갇힌 기분으로 한참을 헤맸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시간은 겨우 삼 분이 지났을 뿐이다. 이대로 영영 남자에게로 가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번 달 들어 방문한 세 사람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여자는 이번엔 반드시 남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나선 길이었다. 여자는 두 종류의 팸플랫이 들어 있는 서류철을 한번 내려다 본 뒤, 손바닥에 밴 땀을 바지에 쓱 문질러 닦았다. 그렇게 얼마쯤 안내 표지판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여자는 단호한 걸음으로 지상으로 향하는 통로를 걸어 올랐다. 계단을 벗어나자 지상에 가득한 햇살이 지체없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직 차가운 바람과 연노랑빛 햇살은 어쩐지 조화를 이루지 못해 뭔지 모르게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올바른 출구를 찾지 못했으므로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무작정 나온 출구 반대방향으로 걷다가 다시 뒤돌아서 걸어온 방향으로 걷다가 다시 방향을 바꿔 걷다가........

여기에서도 작가는 김도명이라는 여자를 통하여 출구룰 찾지 못하는 방황하는 자아를 그렸다. 현실의 공간에서 찾을 수 없는 그 애타는 갈증은 지하철역에서 두 가지 팜플렛을 들고 선택 하지 못하는 여자라는 것을 말하려했다. 물론 여기에서 다시 청마연립까지 불과 삼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하므로 대단한 실수를 한다. 삼분 만에 온 택시의 요금을 여자는 삼천 오백 원을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작가가 화자의 중심에서 느끼는 초조감이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시간은 겨우 삼분이라는 시간적 초조함을 말하거나 3층에서 뛰어 내릴 것이라는 암시라 치더라도 삼이라는 숫자를 겹쳐 놓은 (3층, 3분, 실패한 3사람, 3층 마지막 집, 3개의 팜플릿)구조는 억지스러웠다.

Ⅱ.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시간


남자도 한때 남들처럼 이력서를 들고 고층건물 사이를 헤맨 적이 있다. 뿌린 이력서가 거의 이백 장에 가까울 무렵, 남자는 한 증권 회사의 면접장에 앉아 있었다.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손가락의 작은 움직임, 폐부로 들락거리는 공기의 흐름, 아주 긴 시간의 정지감들이 느껴졌다. 실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남자를 떠나 제멋대로 널 뛰고 있는 상태, 자신이 면접장에 있기나 한건지 공간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면접관 등 뒤로 햇살이 넘쳐흘러 공간을 가득 채우고는 서서히 몸을 죄어들기 시작했다. 햇살은 보이지 않는 밧줄인 듯 남자를 옴쭉달싹 못하게 만들어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남자는 햇살에 바싹 마른 모래처럼 부서져 내렸다. 마치, 치명적인 빛에 노출돼 죽어가는 야행성 벌레처럼 말이다.

생쌀과 날 채소만으로 버티는 남자도 처음부터 인생을 그져 포기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희귀병이 걸리고서부터 기르기 시작한 마다가스카르 휘파람 바퀴벌레처럼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달 아래서 울부짖기도 하고 자신도 세상을 향해 야옹거리고 짹짹거려보았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증권회사의 심판관처럼 자신을 포승에 묶고 마른 모래처럼 부서지게 하여 야행성의 바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의 옆얼굴을 훔쳐보다 여자가 정말 자신을 상대로 자살예방 캠페인을 하려고 찾아온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 잠깐 여자의 손에 이끌려 죽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여자 또한 남자의 바퀴벌레를 한 마리 씩 차레로 죽이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바퀴벌레가 자살을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죽을까를 상상한다. 여기에서 여자와 남자가 같은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Ⅲ. 비상구로 가는 길

남자의 자살충동과 여자가 사층 높이에서 떨어졌을 때 죽을 수 있다면 3층 높이에서 몸을 던지면 어떻게 될 까 에 대해서 생각은 그들의 갈등속에 희미한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동부 아프리카의 섬, 두 개의 뇌를 가진 마다가스카르의 바퀴벌레처럼 또 다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실제로 존재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클럽 <비상구>의 팜플릿을 보는 현실은 평생 동안 햇살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살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남자는 하나의 뇌가 죽고 난 마다가스카르 바퀴는 어항 속에서 삶을 끝내고 나서도 다시 또 삶을 살아가다가 그러다 얼마만큼 시간이 지나면 마다가스카르 바퀴는 나머지 삶도 끝낼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첫 번째 죽음도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죽을 때의 방법을 스스로 택할 수 있다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또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이 끝나면 또다시 이어지는 두 번째의 삶, 한 개의 뇌가 떨어져 나가고 몸통도 반이나 날아가 버린 어항 속의 마다가스카르 바퀴가 곧 자신인 것만 같아 누군가 자신을 갉아먹는 상상을 하며 남자는 지상에서 사층까지의 높이를 가늠한다.

작가는 아무리 작게 몸을 움추려도, 어디에도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을 때, 그 때 그들이 떠올리는 두려움의 끝을 말하고 있다.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함께 선택해야할 목숨을, 가장 낮은 자의 자리에서 끌어 올렸다. 그늘지고 억눌리고 약한 사람들이 죽을 이유도, 죽지 않을 이유도 없다는 자포자기한 심정을, 마다가르카스라는 바퀴벌레의 두개의 뇌로써 삶의 처절한 갈등구조를 그려주었다. 심도있게 끌고 나간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자의 자아의 분열과 바퀴벌레를 설정하여 보여준 심리묘사부분에서 작가의 뛰어난 의도와 형식을 보며 생명존중을 생각하게 된다.
마치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하며 자살을 유일한 비상구로 여기는 이 비현실적인 공간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며 하루 수백 명씩 자살을 꿈꾸는 우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세상을 향해 두텁게 커튼을 내리 친 아웃사이더들의 <비상구>가 찌라시로 붙여지고 있지 않을까?
찬란하고 강렬한 햇빛 아래서 빛을 향해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활짝 벌려 빛이 자신을 깨끗하게 태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