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이렇게 생채기를 남기고 지나간 것들이 있다.
처음엔 알 수도 없이, 그리고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사라져간 것들에 대해.
밤새 얼었던 호수는 아침이 되면 녹기 시작한다. '쩡∼ 쩡' 얼음장 깨지는 소리가 마을을 깨운다. 새벽닭이 서둘러 홰를 치고 민가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을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옥정호에 봄이 오고 있다.
전북 임실 옥정호. 만수 면적 25.5㎢의 아담한 호수지만 풍광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호반도로를 따라가다 만나는 국사봉(475곒) 꼭대기에 서면 한폭의 그림 같은 옥정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새벽녘에 찾은 옥정호는 하얗게 얼어붙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에는 잔설이 남아 있다. 임실땅 첩첩산중에 숨은 호수까지는 아직 봄볕이 당도하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오전 7시30분 무렵, 호수에 햇빛이 비치기 시작할 때까지만 기다려 보라. 봄내음 물씬 풍기는 호수를 만날 수 있다. 햇빛이 닿는 곳부터 얼음이 녹고 물결이 반짝인다. 호수를 에두른 먹빛 산자락에서는 슬금슬금 안개가 내려온다.
옥정호는 1926년 섬진강 물줄기를 가로막은 섬진강댐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호수. 옛날 지도에는 운암호 또는 섬진호로도 표시돼 있지만 지금은 옥정호로 불린다.
옥정호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입석리다. 호숫가를 따라 도는 호반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3∼4년 전까지는 낚시꾼들만이 알음알음 찾았지만 지금은 제법 널리 알려져 있다. 도로는 반듯하게 포장됐고, 수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낚시가 금지됐다. 최근에는 사진작가들 사이에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카메라 사이트에도 옥정호 사진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물안개가 가득 피는 11월이면 하루 20∼30명의 사진작가가 몰려듭니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면 새벽 4∼5시까지는 국사봉에 올라가야 하죠."
국사봉 아래에서 '국사봉 전망대'라는 자그마한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형도씨(44)의 말이다. 이른 새벽 국사봉에서 만난 한 사진작가는 "매달 두세차례는 옥정호를 찾는다"며 "옥정호는 4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11월과 3월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옥정호에는 예쁜 섬이 떠 있다. '외안날'이라는 마을이다. 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겼다. 팔순노인과 젊은 부부 한쌍 등 2가구가 살고 있다. 팔순노인은 찹쌀농사를 짓고 부부는 전주의 직장에 다닌다고 한다. 외안날을 찾는 외지인이라고 해봐야 가끔 편지를 전하기 위해 배를 타고 찾아오는 우체부가 전부일 정도로 고요히 떠 있는 섬이다. 이곳에서는 한 제철회사의 CF를 찍기도 했다.
운암대교에서 3분여를 가면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언덕배기에 작은 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시인 김용택이 근무하던 마암분교다. 김시인은 3년 전 다른 학교로 옮겼다. 방학 중이라 학교는 텅 비어 있지만 철봉과 시소가 놓여 있는 자그마한 운동장이 정겹다.
저녁 무렵의 옥정호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호수에는 반영이 드리워진다. 물 속에 섬이 떠 있고 물결 사이로 새털구름이 떠 간다. 옥정호에 봄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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