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이었지, 겨울 폭풍이 온 날
우리는 폭풍 속에 여관 하나를 열었네
나무들이 뽑힌 자리에 지붕이 날아간 자리에
우리는 여관을 열어 잠시의 몸을 의탁하고 있었네
서로 안고 있었지 젖은 강아지 한 마리 머루 같은 눈을 하고
우리 품 안에서 떨고 있었지
폭풍여관에는 당신이 있었지
날 잡아먹었던 하루의 눈을 가진 당신이 있었지
그 방 77호로 들어가면 큰 악기가 있고
아니 아주 작은 악기가 성경 옆에 놓여 있었지
악기는 통곡의 벽을 잊어버렸고
아니 아니 통곡의 벽에다 머리를 기대고 우는 나날을 잊어버렸고
내 악기는 학살의 마을을 미끄러져 들어가던
탱크의 몸을 하고 있었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은 언제나 젖어 있었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발목은 언제나 아팠지
역청을 귀에 넣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세계는 언제나 무료했지 귀에다 샤워꼭지를 집어넣고
별을 기다릴까봐
물결이 파랑파랑 별로 들어가는 날까지
완숙도 미숙도 아닌 나와 불화하는 모든 내전의 기록들을
쓸쓸한 내 종이가 다 적을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술은 언제나 말라 있었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금은 언제나 깊었지
늪 사이에서 더 이상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길어지는 나무들처럼
굶어가는 아이들에게 헌금을 바치기 위해 일 나가는 젖은 강아지처럼
내 악기가 입술을 벌리면 아픈 꽃술이 나오지
꽃술에 묻어 있는 꽃가루가 다시 악기를 낳으러
그 방 77호에서 나와 하늘을 한 사리 밟지
악기의 재생산력에 놀란 음악은 악기의 엉덩이로 들어가지
음악과 악기에게 콘돔을 주어요 그러다 에이즈라도 걸리면
교황 할아버지는 얼마나 슬플까요
비틀비틀 무대에 서 있던 자선 록 음악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 나날을 교회벽에다 바쳐야 할까요
12월 28일이었지, 겨울 폭풍이 지나간 날
우리는 고요 속에 여관 하나를 닫았네
나무들이 뽑힌 자리에 지붕이 날아간 자리에
우리는 여관을 닫고 잠시의 마음을 그 안에 두었네
서로 안고 있었지 젖은 강아지 한 마리 머루 같은 눈을 하고
우리 품 안에서 떨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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